세병관은 우리나라에서 단일 목적으로 지어진 가장 큰 건물이라고 합니다.
또한 경복궁의 경회루, 여수의 진남관과 함께 조선시대 3대 목조건물 중의 하나입니다.
세병관을 오르는 돌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세병관 지과문(止戈門) 앞에 길게 늘어진 돌계단은 청석으로
인근 섬 주변에 자연적으로 생성된 400년전 돌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아주 폭이 좁고 가파른 것이 영 오르기 쉬운 것이 아닌데요. 그렇게 만든 의도가 있다고 합니다.
좁은 계단을 쳐다보며 오르다 보면 자연스레 고개가 숙여지게 됩니다.
이는 바로 임금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숙이며 세병관으로 들어가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돌 하나에도 이런 의미를 지닌 세병관! 역시 통영을 상징하는 건물답습니다.
또한 세병관 내부에 빈 공간마다 그려진 그림을 보면, 그 당시 세병관의 위엄을 알 수 있는데요.
중복되게 그림을 그리지 않고 매화, 소나무, 풍경화 등등 각기 다른 그림으로 채운 세병관의 내부 모습은
마치 하나의 한국화 갤러리 같습니다. 지금은 오래 되어 색이 많이 바랬는데요. 봄부터 복원에 착수한다고 합니다.^^
세병관은 지금 한창 복원이 진행되고 있는데요.
세병관을 기준으로 왼쪽편은 12공방이 있었던 자리고 오른쪽은 운주당과 내하 고 등이 있었던 자리라고 합니다.
지금은 복원 공사가 한창 중이라 담벽 너머로 볼 수 있었는데요.
어림으로 보아도 그 규모에 놀라고 갑니다.
하지만 지금 복원중인 규모는 당시의 30% 밖에 안된다고 하니, 당시 통제영지 세병관의 규모와 위엄이 상상이 되시나요?
그럼 이때 번뜩 드는 생각 하나!
복원 중이라 함은 곧 소실되어 없는 것을 다시 만들어 재현한다는 것인데 세병관도 그럼 가짜 건물이란 말인가요?
통영 분들 중에 이런 질문을 하는 분은 없겠죠? ^^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통제영지는 불에 타 소실되었습니다.
하지만 유일하게 세병관만은 왜군이 불을 지르지 않았는데요.
왜일까요?
바로 세병관이 그 당시에 학교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기둥을 기준으로 학급을 나눠 학교를 운영 했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세병관은 참사를 피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세병관에서 공부한 덕분에 우리 통영에서 위인들이 많이 생겼던 걸까요? ^^
두 번째 통영 이야기, 통영 다시 보기 어떠셨나요?
이 글을 읽으시고 통영을 다시 보게 됐으면 합니다. ^^
저는 계속적으로 통영 이야기를 풀어 나갈 테니 앞으로도 많이 기대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