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트라숲 이야기

BTW4기 국내탐방 후기-파이팀;경지현.박선빈.신명지.이은지

  • 2011-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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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국내탐방 후기
경지현
맨 처음 BTW를 신청할 때의 나는 꿈 찾기라는 타이틀보다 지속가능 발전이라는 개념이 나를 자극했다. 마음가짐은 나의 꿈을 찾고 RCE제단이 내 걸고 있는 경제 사회 문화의 조화로운 발전의 실효성을 확인하는 것 이였다. 그 다음 나만의 작은 목표를 세웠다. 그것을 내 꿈인 기업경영과 접목시켜 보는 것 이였다. 국내탐방 이전에는 실효성이 크게 나타나는 회사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국내 탐방의 결과로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탐방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당장 탐방이 내일인데 오늘 숙소가 취소되는가 하면 우리가 가는 이틀 동안 모두 비가 내린다고 했다. 하지만 임기응변으로 숙소를 다시 잡고 예정대로 출발했다. 남부터미널에 도착하고 머뭇거리다 구호를 외치고 본격적으로 활동하기로 했다. 처음 가본 서울이라 그런지 주변 환경 모든 것이 신기했다. 계획대로 디오텍 사무실을 방문 했다. 예상과는 달리 너무 반갑게 맞이 해주시는 것을 보고 약간 당황했다. 이미 깨진 약속의 쓴맛을 본 우리팀은 과분한 대접을 받았다. 회계사 펀드메니저 CEO 의사 모두 인터뷰 약속을 잡고 일방적인 통보형식으로 약속이 깨진 우리로서는 낙담한 상황이였다. 나는 이런 일을 겪고 사회는 그리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겉으로 우리가 미래의 인재라고는 하나 아무도 우리가 미래의 인재가 될 수 있도록 조력자 역할을 해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디오텍 방문을 통해 사회에는 우리 같은 꿈나무들에게 호의적인 분들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부사장님이 말씀하시기에 앞서가야 생존한다고 하셨다. 회사 내의 분위기만 보더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관료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속에 이상적인 기업을 꾸려가고 계셨다. 모두 말로는 여권신장이며 남녀의 평등한 사회적 지위를 외치지만 정작 실천하는 기업들은 극소수이다. 하지만 디오텍은 출산, 육아, 생리 휴가 등 휴직 후 다시 복직할 수 있는 회사 내의 시스템을 정착시켜 놓았다. 여기서 되새겨 보자면 지속가능 발전의 기본적인 이상향이 경제 사회 환경의 조화로운 발전이다. 회사 내에서도 이 세부분이 조화롭다면 무한한 발전이 있을 것이다. 현 기업들은 경제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내가 방문한 디오텍은 경제와 다수의 기업이 간과하고 지나치는 사회면을 함께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 결과 일하기 좋은 중소기업으로 선정된 것인지도 모른다. 요즘 기업은 경제와 사회를 엮어서 생각하고 경제와 환경을 엮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기업들은 3부분 중 한 부분은 놓친다. 디오텍도 경제와 사회 부분은 손색이 없지만 과연 친환경적인 사업을 하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분명 조화로운 발전은 편파적으로 발전하는 것 보다 큰 효과를 보여준다. 만약 기업들이 경제 사회 환경 모두 동등한 투자를 한다면 동경하는 기업 이상향이 될 것이다. 어렵지만 디오텍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면 확신할 수 있다. 그리고 두 번째 서울대 멘토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사람들이 얼마나 멋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보다 내가 앞서는 것을 찾았다. 그들은 서울대학교 재학 중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확실하지 않은 꿈 때문에 자유전공을 선택하여 자신의 진로를 찾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고등학생 신분에 미리 시행착오도 겪다보니 그런 부분에서는 내가 더 성숙한 것 같았다. 다음은 법무팀장 선기하 선배님을 만났다. 선기하 선배님은 인생 선배 같은 말을 많이 해주셨다. 선배님의 고향도 통영이라 했다. 분명 발전을 위해 개발은 불가피 하다고 말씀하시면서도 개발된 통영을 안타까워하고 계셨다. 환경을 생각하지 않은 조선소의 유치는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 또 한번 확신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국내 탐방을 통해 나의 목표를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특히 디오텍 실장님은 너무너무 자상하시고 설명도 잘해주시는 이시대의 현모양처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팀원들에게 느낀점을 쓰자면 몇 달 동안 적응한다고 묻혀가다시피 했는데 적응하고 난 뒤부터 활동도 재밌고 내가 팀에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요즘 내 할당량이 점점 커지는데 힘들지만 그만큼 서로 합리적이게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 고맙다. 그리고 국내탐방 내내 돈 관리 어설프게 하는 총무 때매 답답했을 것 같은데 집에 와서 계산해보니까 그래도 돈은 딱 맞더라 어설퍼도 잘 마무리 했다. 그리고 중3 두 명이 우리 둘 때매 고생 많이 하는 것 같다. 내가 말은 안 해도 고마워하고 있다는 걸 알면 좋겠는데 암튼 우리팀은 진지해서 좋은 것 같다. 다들 고생했다 고생한 만큼 보람 있었다.
박선빈
이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된 것도 꿈이 없으니 무엇이든 해보자 라는 취지에서 였다. 꿈을 찾다가도 포기한 적이 수두룩해서 '이 체험을 통해서 과연 꿈을 찾을 수 있을까?'하는 부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소집일이 되고 팀을 만드는 순간 '아, 다른 것들과는 차원이 다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파이 팀의 구성원으로 활동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역시 규모가 가장 컸던 국내 탐방이다. 국내 탐방은 준비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고, 만들어야 할 것들도 꽤 있었다. 그런데 나는 모든 일을 나 혼자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팀원들을 믿지 못했던 내가 너무나 많은 일을 하려고 하다 보니 잘 되지 않았던 것도 있었고, 의견 충돌도 있었다. 그 때 나는 팀원들이 그 일을 어떻게 처리하든 팀원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게 조화이며 팀워크라고 생각한다. 어떻게든 준비를 끝내고 출발한 국내 탐방은 많이 걱정이 되었다. 인터뷰를 하다가 흐름이 깨지면 어떡하나, 우리가 조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어떡하나 갖가지 고민을 했지만 해결되는 것은 없었다. 인터뷰는 순조롭게 여러 사람들을 만나가면서 잘 끝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 팀이 생각하는 가장 인상적인 일은 아마 지하철 설문조사였을 것이다. 처음 모르는 사람에게의 말을 떼었을 때의 그 어색함을 생각하면 아직도 떨린다. 어떤 분들은 우리를 쳐다보시지도 않고 가셨고, 그리고 호기심은 보이셨으나 나의 소심한 말에 그냥 가셨던 분도 계셨다. 그 때 나는 사회의 쓴 맛(?)을 보았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정말 한 배에 탄 것처럼 같이 참여를 부탁했을 때 몇몇 분들은 점점 판의 부분들을 채워주시고 계셨다. 그렇게 우리는 약 200명의 설문조사 결과를 얻었다. 그 일을 하고 우리는 모두 지쳐 어떤 것도 할 수 없을 상태였다. 아마 그 때 우리의 첫 조화가 이루어 진 것 같았다.
숙소에서는 두 번째 조화가 이루어졌다. 숙소의 식탁에 앉아 우리는 새벽 1시부터 회의를 했는데 비몽사몽인 정신으로 우리는 마음 속에 담아두었던 얘기나 평소에는 말하지 못할 법한 얘기들을 술술 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 때까지 묵었던 것들이 조금씩 풀어지는 느낌이었고 '와, 우리가 친해질 수도 있구나.'하는 감탄을 했다. 친해지고 말을 트고 나니 한결 편해지는 느낌이었다.
나에겐 물론 인터뷰나 설문 조사를 통해 얻는 정보적인 면도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사회 생활에 꼭 필요한 팀워크가 원할할 수 있기까지의 과정을 몸소 체험을 해보니 너무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나는 꿈의 기초적인 틀도 잡았고 '국제회의 기획사'라는 꿈도 결정했다.과정은 험난했지만 성과는 만족할 정도로 잘 나온 것 같아 나름 뿌듯하다. 이제 남은 4개월, 파이팀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커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은지
'나의 꿈을 꼭 찾자!'라는 목표로 BTW에 신청한 이은지.
나와 같은 '꿈찾기'라는 목표하나로 모인 44명의 사람들.
저는 처음에 모든것이 낯설고 어색하기만 했었습니다. 그리고 어색 그 상태로 이루어진 팀, 파이팀! 처음엔 몹시 마음에 들었습니다. 잘 통하고 순조롭게 잘 굴러갈 것 같았습니다. 물론 처음엔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희 팀에게도 몇번의 고비가 있었습니다. 다툼과 화해 그리고 또 다툼과 화해... 하지만 서로 먼저 마음을 열고 훌훌 털어놓으며 믿고 의지하니 저희 팀은 처음과 같이 돌아왔습니다. 지금 저는 이 한번의 고비를 정말 감사히 여기고있습니다. 이 고비가 없었다면 저희 팀원들을 속마음을 몰랐을뿐더러 소통이 잘 안돼 8월 국내탐방을 이렇게 멋지게 성공할 수 없었을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협력하는 지금 이대로 쭉 이어가 9박 10일을 함께하며 서로의 꿈을 향해 다가설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저는 이 BTW활동을 통해 많은걸 배웠습니다. 가장 큰 얻음은 저의 꿈입니다. BTW 활동을 하면서도 저는 저의 꿈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은 ' 내가 BTW하는 이유가 꿈찾기인데 이게 잘되고 있는건가?'라는 생각을 하며 고민을 많이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글로벌 생명공학 CEO'라는 멋진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적극성을 배웠습니다. 저는 초등학교때 까지만 해도 활발한 성격을 가지고 모든지 도전하는 아이였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저의 성격이 남들 앞에 서기 싫어하고 낯가림이 많은 성격으로 변했습니다. 하지만 펀드레이징활동과 지하철역에서의 설문조사&서울대 설문조사 등을 하면서 먼저 다가서는 것을 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의 콤플렉스였던 성격을 고칠 수 있어 정말 좋았습니다. 또 팀 활동을 할때의 중요성들을 배웠습니다. 팀활동을 하며 제일 중요한 점은 '의사소통'이였습니다. 서로 속마음을 숨기고 있다보니 서로에 대한 안좋은 감정만 쌓여갔습니다. 하지만 이걸 다 풀고나니 내가 먼저 마음을 열수 있게되었고 팀도 잘 돌아갈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협력, 배려 등은 말할 것도 없이 중요했습니다.
벌써 BTW가 끝나간다는게 시원섭섭합니다. 숙제, 자료등으로 힘들고 짜증도 났지만 지금와 생각해보면 아주 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남은 4개월동안 최선을 다해 활동하여 저의 꿈에 한발짝 더 다가가고싶습니다.
신명지
8월 국내 탐방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라면 역시 단연 서울대학교 탐방 및 서울대생 인터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국내 탐방을 가기 전부터 고2라는 저의 상황에서 대학교는 큰 관심사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미래인재캠프라는 곳에서 서울대 언니오빠와 멘토링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국내 탐방에서 인터뷰도 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과연 제가, 저 같은 애가 서울대를 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반신반의 하고 있었는데 국내탐방을 하며 서울대에 발을 디디는 순간 너무 서울대생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국내 탐방이 저에게 확실한 공부자극제가 된 셈입니다. 국내 탐방을 통해 저는 서울대생이 되겠다라는 구체적이고 중요한 목표를 얻은 것입니다.
또한 디오텍과 아주그룹을 방문했을 때 저희가 탐방한 두분 모두 통영이 고향이시고 통영에 대한 애정 또한 남다르신 것 같았습니다. 저는 항상 대학교를 통영을 떠나 무조건 서울을 가야한다고, 통영에 남아서는 안된다는 생각만을 가지고 있었는데 통영을 떠나신 분들께서 통영을 저희보다 더 사랑하시는 것 같아서 괜히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진짜 제가 통영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고 통영을 좀 더 개발할 수 있는 생각만 할 것이 아니라 통영을 얼마나 더 잘 보존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결론적으로 통영자체를 더 사랑해야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지하철 역에서 저희는 괜히 사투리를 써서 사람들이 쳐다볼까봐 말도 크게 잘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끼리 지하철 표를 끊고 보증금을 반환하는데 처음에 조금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다 몇 번 지하철을 타고 갈아타기를 반복하니 조금은 능숙해졌습니다. 그 때 어떤 어른 분께서 자동 교통카드 충전기에서 쩔쩔매고 계시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불과 몇시간전 저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적극적으로 다가가 도움을 드리고자 했습니다. 처음엔 저희가 했을 때도 기계가 문제를 일으켜 난감했지만 꼭 도와 드리고 싶어서 다른기계를 이용해서 교통카드 충전에 성공했습니다. 어르신 분께서 고맙다며 가시는데 그 뿌듯함은 저희가 고생했던 것을 씻게 해주는 듯 했습니다. 통영에서 올라온 저희라도 서울에서 사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자그마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지하철 역과 서울대학교에서 설문조사를 했는데 사람들이 처음엔 아무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아서 무척이나 속상했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다가가지 않으면 사람들도 다가오지 않는다는 당연한 진리를 깨닫고 사람들에게 다가가 빅파이를 내밀며 설문조사 참여를 요청했습니다. 사람들은 궁금하다는 듯이, 혹은 빅파이를 받겠다는 생각으로 설문조사에 응해주셨고 저희의 설문조사는 꽤나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국내 탐방의 일정을 마치고 보니 저희에게 귀한 시간을 내주신 분들에게는 정말 사소한 빅파이나 사탕조차도 드리고 오지 못했다는 생각에 후회가 남았습니다. 그래서 꼭 작은 선물이라도 해드려야겠다고, 꼭 보은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희에게 베풀어주신 분들에게 반드시 보답을 해야하는 것에 대해 한번더 상기시킨 국내 탐방이었다. 저희의 국내 탐방을 도와주신 모든 분들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