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트라숲 이야기

다문화가정 2주간 베트남 일지입니다

  • 2011-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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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날씨도 경제도 너무나 춥습니다
이럴때 일수록 건강관리 잘 하고 힘냅시다
금부터 한산도 전역 다문화 가정을 이끌어 오면서 겪었던 일들을 모두다 글로서 옮기기엔 너무나 방대한 분량이라 다문화 가정 연수차 지난2009년11월에 2주간 베트남 다녀오면서 배운 베트남 문화와 한 다문화 가정이 대한민국 영주권을 받기위하여 법무부 다니는 일까지 정리하여 올리도록 하겠으며 우리나라는 단일 민족으로 전 세계에 자랑거리 였으나 남아사상으로 부득불 외국인 여성이 시집을 올 수밖에 없었으며 우리가 살아가면서 도만 틀려도 고향이 그립고 어떤이는 동네만 틀려도 문화에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역만리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뒤로 하고 홀홀단신 오직 한사람 신랑만 믿고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왔으니 그 다문화 가정이 살아가면서 발생할 문제는 음식 언어 환경 관습 문화 생체리듬 기타등등 문제에 소지는 너무나 많으며 우리나라도 거부 할 수 없는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었고 외국인 노동자 들이 한국을 이해하고 잘 적응해야 나라에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이들이 잘 살아가도록 우리가 도와주어야 하기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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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로서 현장 곳곳에서 몸소 느끼고 배운것을 토대를 그대로 올리는 관계로 약간에 오차는 있을 수 있으니 아래에 자료를 참고 하시기 바라며 베트남에 머무는 2주동안 베트남 정부로부터 자국민이 한국으로 이주하기에 국적포기에 관련한 서류를 받기위하여 한국 신랑은 우리나라로 치면 법무부에 들려 엄격한 심사를 받아야 하기에 베트남에 대해 공부하여 필연적으로 물어보는 질문에 충분한 설명을 해야 하는데 이 역시 의사소통이나 물어올 단어가 무엇인지 잘 모르기에 현지인 도우미를 채용해야 했으며 현지인 도우미는 유창한 한국말과 예상 문제에 대해 베트남 어와 한국어로 만들어진 문제지를 가지고 잘 설명 하였고 베트남 정부에서 물어보는 요지는 자국민이 해외에 나가서 인권유린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위하여 방지책이며 어떻게 해서 신부를 알게 되었는지에서 부터 시작하여 참으로 많은 내용이 있지만 지면 관계상 생략하고 한마디로 가족중심적인 이야기로 자국민이 고생하지 않도록 하기위하여 정부로서 마지막으로 최선에 노력을 하였으며 글로서 표현을 다 하자면 한권에 책을 써도 부족 하리라 사료되며 공산국가라 어려운 점도 많았고 적잖은 돈과 시간을 들려 여러번 불려다닌 끝에 한국으로 돌아오기 직전에 참으로 어렵게 간신히 법무부로부터 서류일체를 넘겨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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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베트남 여성이 이역만리 지구 반대편에서 자국에 가족의 안녕을 위하여 희생하며 한국에 신랑을 만나 사랑이 뭔지도 모른체 대한민국에 국민아닌 국민으로 살아 간지 6년차 어느덧 피붙치인 자녀가 2명에 유창한 한국어에 한국김치가 없으면 밥을 먹을수 없는 누가 봐도 피부색만 제외한 나머지 한국 사람이 분명하나 현실은 그렇지 않으며 고국에 돌아와 창원소재 법무부 출장소에 들려 한국 국적취득에 관련한 서류제출 하는데 어찌나 까다롭고 담당자의 의도가 대필해 주는 곳에서 서류를 만들어 오라는 식이라 섬에서 올라간 우리로선 물어물어 찾아다니고 하느라 1박이 불가피 하였고 많은 사비가 들었으며 서류심사 기간이 6개월 지나 시험 및 상담이 있다고 출두하라는 공문에 따라 준비하여 역시 창원법무부에 들려 보니 많은 이주여성들이 긴장하여 상담시 예상되는 문제를 외우고 있었으며 순번을 기다리는 동안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고 법무부 공무원과 마주 안자 일문일답식으로 질문하고 답하고 내용은 일반상식에 가장 어려운 관문은 우리나라 애국가였는데 음정박자가 맞아야 하는데 외국인으로서 감독관 앞에서 초긴장 상태에서 틀리지 않고 부른다는 건 어찌 보면 무모한 일이 아닌가 생각하며 이미 한국에 와서 아이 낳고 몇 년째 살고 있는데 떨어진 사람들은 어쩌란 말이며 영원히 이방인으로서 국내 불법 체류자가 안되기 위하여 법무부에 들려 1~2년 연장신청 하는 소모적인 일이 반복되고 국적을 취득 하는데 까지 서민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너무나 많으니 해당 관청에선 면밀히 건토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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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아이티 강국으로 전 세계가 인정하는 나라에서 많은 걸 누리고 살고 있다고 자부하고 그중에 핸드폰은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베트남으로 출국 전에 전 세계를 리드 하는 우리나라도 핸드폰이 잘 안 되는 곳이 있는데 하물며 후발국인 베트남은 핸드폰이 잘 터질까 하는 생각 요즘 사람은 모든 걸 핸드폰으로 해결하니 2주간이나 사업과 여러 봉사단체의 업무 공백을 부족하지만 핸드폰으로 해야 하였기에 고심에 고심을 하다가 출국 직전에 공항에서 로밍에 관련한 의문사항 주의사항을 자세히 숙지하고 베트남에 도착 핸드폰을 켜는 순간 폰이 알아서 자동로밍 하고 시차도 2시간이 늦은 현지시간으로 자동세팅 되었으며 후치민공항에서 속향까지 차로 6시간 달리는 동안 산이 하나도 없고 큰 빌딩이 없어 전파가 방해를 받지 않아서 인지 기지국도 자주 없지만 아무 곳에서나 핸드폰이 잘 터졌으며 우리나라는 사용후 정산되어 월단위로 요금을 수납 하는데 베트남은 우리와 반대로 선불카드를(우리나라 공중전화카드)사서 핸드폰에 장착하면 되도록 되어 있으며 베트남 시가지 가는 곳 마다 한국 삼성과 일본 노키아가 진열되어 있었고 중국제품은 못 사는 사람이 구매사용 한다고 정리가 되어 있었으며 하노이나 호치민 대도시는 어떠한지 알수는 없지만 가정에 유선전화 보급이 안 되어 있는 상태에서 무선(폰)이 급속도로 발전해 우리나라(광케이블)처럼 인프라 구축은 어쩌면 영원히 못 하리라는 생각이 들며 물론 소 도시지만 2주 동안 수없이 돌아다니며 공중전화는 호치민 공항안에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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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하면 하얀 원피스와 갈대 비슷한 걸로 만든 꼬깔 모자다 우리나라에서 베트남 자료를 접할 때면 하얀 원피스에 자전거를 타고 가는 장면이 어느 자료든 나오기에 항상 접해서인지 동경에 대상이 되어 관심순위 상위에 랭크되어 포커스를 잡아 보려고 무던히 노력 하였지만 연출이 아닌 실생활에서 촬영이 쉽지는 안았으며 도로에 나가면 오토바이 매연 날씨로 화질에 문제 기타등등 필자인 내가 원하는 사진 자료가 아니지만 노력을 했다는 것만 알고 보아주시기 바라며 하얀 원피스는 여학생들이 입는 베트남어로 아오자이라는 옷으로 베트남 하면 모두다 아오자이라는 옷을 입는 줄 알고 있었으며 공산 국가라 남녀관한 엄격 할 줄 알고 있었지만 베트남역시 사람 사는 곳인지라 학교를 졸업하면 곧 바로 시집을 보내 남녀관한 구설수에 오르지 않도록 방지 하고 있으며 이때부터는 색깔이 들어 있는 아오자이를 입으며 우리나라에 한복 대여점이 있듯이 베트남에도 아오자이를 대여(대여료 한국 돈으로 1일 만원)해 주는 곳이 도처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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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겨울이라 아열대인 베트남에서 2주간에 생활이 나름대로 걱정이 되어 국내에서 몸 컨디션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려서 출국 하였는데 아내는 로타리클업에서 1년 전부터 계획을 세워 봉사관련 산행이 잡혀있어 무리 하였는지 감기가 걸린 상태에서 출국하여 열이 올라 귀에서 약간에 피가 나고 우리나라로 치면 민물게인 털게에 해당하는 민물게를 조리하다 눈깜짝할사이에 손톱을 물려 손톱과 손가락이 두동강나는 대형사고가 발생하여 이런저런 일로 병원신세를 지게 되었는데 영문은 호스피탈 같았으며 의사소통이 원활 하지는 않았지만 친절하게 잘 치료해 주었고 그곳에서 가장 큰 종합병원으로 보였는데 시설은 엉망이고 특히 청결 상태가 부족 하였으며 우리나라처럼 병원과 약국이 분업되어 진료는 병원에서 약은 약국에서 타도록 선진화 되어 있었으며 피부색이 다르다 뿐이지 사람에 근본은 같은지 열도 내리면서 감기도 났고 손가락이 반쯤 짤렸지만 곰기지 안고 치료가 되었으며 얼음을 물고 살아야 할 더운 나라에 가서 얼음 근처도 못가보고 억울해 하면서 돌아온 나에 아내이며 병원이야길 적다보니 아내에 껄쩍찌근한 이야길 안 적을수가 없어 공개는 하지만 비밀로 해 달라는 아내가 알면 후안이 따르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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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오전10시 오후5시에 우리나라로 치면 참 먹을 시간에 하루에 두 번 식사를 하는데 음식에서 강한 향신료 냄새가 나서 우리나라 사람 식성엔 맞지를 안지만 향신료를 넣어서 나기 보다는 음식마다 야채가 들어가거나 싸서 먹는데 야채에 고유의 냄새이며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듯이 우리도 그곳에 식사 시간을 지켜야 했기에 먹을 땐 배꼽까지 뽕실하고 아침과 저녁 시간까지 너무나 길어 배가 등짝에 붙을 때 까지 쫄쫄굶으며 허기를 달래야 할 때도 있었으며 직장이나 일하러 가는 사람들은 길거리나 회사 앞이나 식당이나 아무 곳에서 시원한음료 커피 빵 등으로 배를 체우고 저녁역시 일찍 먹기에 아침과 마찬 가지로 위에 부담이 가는 음식으로 먹고 살아가고 있으며 아열대지방이라 무더워 시원한걸 하루종일 입에 달고 살아야 하기에 국민에 대다수가 위장병이 있다고 보시면 되며 이번에 문장은 벼에대해 서술 한다는게 엉뚱한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어 본론으로 들어가서 물이 풍부하고 연중 기온이 높아 벼가 잘 자라도록 조건이 좋으며 특히 산이 없어 경지정리가 잘된 평야로서 논에 끝이 보이지 않으며 1년에 3모작이 가능해 한쪽에선 벼를 심고 한쪽에선 벼가 익어가고 또 한쪽에서 벼를 베서 타작을 하는 진풍경이 벌어지며 벼 파종은 직파를 대부분 하고 모판은 따로 심어 직파시 빠지거나 자라지 않은 빈곳에 조금씩 때어 멀리서 던져서 심으며 우리나라에 경우 빠지거나 빈곳은 허리를 90도 각도로 꾸부리고 정성들려 때어내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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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하면 공산국가고 우리나라가 월남전에 참여하여 뒤 예기가 무성하고 습하면서 무더운 날씨라 모기가 극성을 부릴 거라 생각하여 출국직전까지 모기와의 싸움을 어떻게 피해가야 하는 고심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베트남도 똑 같은 사람이 사는 곳이라 자연에 조화가 맞물려 한국이나 베트남이나 별 차이가 없었으며 그 이유는 천적이 해결하고 있었으며 비행기에서 호치민 공항에 내리니 그 가족이 환송을 나와 고향에서 대절하여 타고온 봉고에 올라타 7시간가량을 달려 고생 끝에 도착하니 반겨주는 것은 도마뱀 카멜레온 들이 벽 천정 건물 여기저기에 붙어서 혀를 날름 거리면서 김애경 안녕 하면서 인사를 하였고 밤이 되면 그 숫자가 폭발 적으로 늘었으며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듯이 어떨 때는 천정에서 기어 다니다 떨어져 겁 많은 마눌 등짝에서 애경아 놀자고 하니 파충류를 가장 싫어하는 터라 까무라치기 일보 직전까지 가는 일이 있었으나 알고 보니 파충류 들이 모기의 천적으로 24시간 연신 잡아 먹기에 위생 상태가 우리보다 불결하고 사회기반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여 웅덩이 하천 하수구 기타등등 모기가 발생할수 있는 여지가 수천배는 높지만 어찌보면 우리나라보다 모기가 적다는 생각도 들었으며 베트남은 모기약 관련은 그다지 발전 하지 않았고 집집 방방마다 모기장이 있었고 잘때는 무조건 모기장 안에서 잠을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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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물의 나라다 우리나라는 산이 많아 물 흐름이 좋아 첩첩산중에 내린 비라도 바다에 금방 도달 하지만 베트남은 하노이 쪽으로 올라가면 산이 있지만 아래쪽은 산이 없어 평야이기에 물 흐름이 안 좋아서인지 전 세계인 누구나 알법한 메콩강도 흙탕물이고 베트남 전역이 그러하며 우리나라 도시에 경우 블록블록 분필되어 도로가 형성되어 있듯이 베트남은 블록블록이 분필되어 큰 강에서부터 우리나라로 치면 큰 하천정도의 수로가 잘 발달되어 하천을 따라 마을이 형성되고 물위에서 생활 하거나 많은 상권이 이루어지고 물을 이용하여 움직이는 수단이 발달 하였고 그렇다고 우리나라처럼 모터보트나 제트스키가 휴양지에 가면 있겠지만 실생활에선 보이지 않았으며 큰 배든 작은 배든 대부분이 목제로 만든 배들이 한결같이 이상한 엔진으로 신기에 가까운 방법으로 몰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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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인 나는 58개띠로 태어나서부터 블혹의 나이로 접어든 지금까지 강이나 하천에서 낚시는 기본이고 맨손으로 바위틈이나 수초사이 를 더듬질로 잡거나 꽝치기인 함마로 바위를 쳐서 고기를 기절 시키거나 삼마이 그물로 잡거나 아님 투망도 있고 된장을 풀어 유인하는 어항도 쪽대도 있고 가장 원시적인 때죽이라는 열매와 입을 찧어 독소로 잡고 이외에도 이름은 생각이 안 나지만 독소를 가진 풀들이 여러 가지 있어 이역시 베어다 찧어서 고기를 잡기도 하였고 지금은 불법이라 금지되어 있는 청산가리가 있었으며 일명 찔찔이라는 밧데리를 이용한 전기로 지지는 일까지 머릿속에 생생하며 바다에선 방법이 다양하진 안지만 민물에서처럼 고기잡는 방법을 적는다면 이역시 만만친 안으리라 보여 생략하고 베트남역시 비록 흙탕물 이지만 고기는 살고 있었고 잡는 방법은 우리나라에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었으며 유년시절 낚시대는 대나무 찌는 갈대나 억쇠 또는 수수깡에 미끼는 자체조달 한마디로 돈 한푼 안 들이는 방법이였으며 베트남의 현제는 대나무 낚시대 삼마이그물 밧데리 찔찔이 더듬질 필자에 유년시절로 타임머신을 타고 40년 전을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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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문화 하면 필자인 나는 코흘게 시절을 연상 하지 않을수 없으며 그때 그시절은 대부분의 가정이 보리고개를 피해갈수 없어 시래기죽 도토리죽 칡죽 고구마죽 비지죽 식구는 많고 식량은 작아 양을 많게 하여 포만감을 주기위하여 죽죽죽으로 시작 식사가 연중 죽죽죽으로 끝났다고 할수 있으며 지금은 지천에 널린게 먹 거리고 입이 가져져 웬만한 음식은 처다도 안보는 시절이나 그때는 먹을게 없어 풀뿌리에서 나무껍질까지 간식 꺼리 였으니 먹을거 너무나 귀한 시절이라 초상이 났다면 온 동네가 잔치가 나고 상여가 나가면 5원이나 10원을 받기위하여 대나무에 매단 여러 가지 깃발을 서로 들고 갈려고 아웅다웅 하였고 절편이나 고기 한조각 얻어 먹기 위하여 묘지 주변에서 흘러내리는 코를 흘쩍이며 장례가 끝나길 기다리던 생각 망자는 후세에 출세를 위하여 명당에 안치하여야 하였기에 첩첩산중이나 옹삭스러운 장소에 묘를 썼고 부를 축적한 사람은 광활한 대지에 호사스런 묘지를 만드는 일까지 우리나라에 경우 장례문화는 필자인 저에 생각으론 고쳐야 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 하는데 베트남 묘지를 집주변에 우리나라 공원묘지 처럼 장소도 적게 차지하도록 하였고 아이들이 놀이터처럼 놀기도 한 것이 장례문화는 우리보다 앞서 가고 있어 우리에 경우 묘지로 인한 국토 잠식이 심각한데 한수 배워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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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인 나는 유년 시절을 뒤돌아보면 학교 공부보다는 가사노동으로 농사를 짓거나 산으로 나무 하러 다닌 기억이 큰 비중을 차지 하였으며 가장 힘이 들었던 부분은 여름 장마철에 아궁이에 불 지펴 밥하거나 고구마 삶거나 소죽 끌이거나 하는 일로서 일단 먹어야 하기에 음식을 하자면 나무로 불을 지펴야 하는데 기나긴 장마철이라 나무가 젖어서 안타거나 보관을 잘 하였다 하여도 일단 습기로 인해 잘 타지를 안아 풍로가 있는 집은 부잣집으로 대부분 입으로 불거나 부채내지는 귀한 신문지로 부치는데 기압골이 낮기에 연기가 아래로 깔리고 역풍이 불기라도 하면 연기가 솥아져 앞도 분간 할 수 없고 눈물 코물로 앞을 가렸고 겨울은 난방까지 나무로 하기에 남의 산에 올라가 나무하다 고약한 주인 만나면 주인에게 나무는 당연히 압수고 지게 낫 새끼줄 모두 빼앗기고 허탈히 돌아 온 적도 있으니 지금으로 치면 엄청난 스트레스지만 일년내내 불과 나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기에 아궁이 하면 지금도 아련한 추억이 있던차 베트남에서 보니 허접한 화덕 비슷한 것이 한국으로 치면 헛간 비슷한 곳에 놓여져 있있고 그을림이 산제 한 걸로 보아 자주 사용 한다고 생각 하고 있는데 마당에 보니 장작이라고 하기도 뭐한 나무를 마당에서 말리고 있어 물어보니 간단한 조리는 부엌에서 카스렌지로 하고 우리나라로 치면 다시나 곰거리 그릴때 사용 한다고 하는데 신기한 것은 유년시절과 지금도 나무로 인한 난방을 하고 있는 필자로서 불 지피고 타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어 한마디로 흐터지면 꺼지고 뭉치면 잘 타는 것이 나무로 인한 불인데 도저히 믿기지 않는 성인 손가락 3개 정도 뭉친 크기의 장작을 2~3개 정도 떨어 틀려 놓았는데 사진에서와 같이 화력이 장난이 아니고 너무나 잘 탄다는 것이 의문이 되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고 있던 차 아내는 화덕에 비밀이 있다고 하나 사가지고 가자고 옆에서 뻠쁘질까지 하였는데 나중에 결론을 내리고 보니 나무에 고무성질이 많이 들어 있어 서로 떨어져 있어도 화력이 좋고 잘 탔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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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사계절이 있고 그중에 여름과 겨울이 있기에 집을 지을 때는 난방과 냉방장치를 설계에서부터 반영하고 더 나아가 가정집 일지라도 내진 설계까지 하는 최 첨단화 되어 가는 밀레니엄 시대에 살고 있지만 베트남은 공산 국가라 땅은 정부에 소유고 개인에겐 장기 임대이며 임대 기간이 최장 100년으로 개인소유의 땅이나 마찬가지며 개개인간에 거래도 이루어지는데 임대기간이 많이 남을수록 가격이 비싸다고 보시면 되며 집을 건축 하는데 참으로 간단하였고 집모양은 옆으로는 제한이 되어있고 길이는 제한이 없어 전면에서 보면 집이 앞은 쫍고 높으며 뒤로는 길고 낮으며 옥상에서 보면 중간이란 없으며 높은 쪽에서 시작 완경사로 되어 비가오면 한곳으로 모이도록 되었으며 건축자제는 너무나 단순 스레트 이상하게 생긴 벽돌 철근 약간 시멘트 문짝 타일 간단한 조명 이게 전부로서 날씨가 더우니 난방 무시 더운 곳에 익숙해서 인지 돈 때문인지 냉방은 안중에 없고 치장은 NO 단순히 벽만 세울 뿐이고 특이한 점은 방과 방사이가 통풍이 되도록 틀로 찍은 벽돌인데 천정아래는 막지를 안아 빛도 세어 나오고 말도 들리고 한마디로 사생활 보호가 무시되는 건물이라고 보시면 되며 우리나라는 간단한 가정집이라도 3개월 정도 소요하나 이곳은 몇일 이면 건축이 가능하고 아주 재미있는 특이한 점은 상중하로 구분해서 집 내부가 바닥이 상은 타일 중은 시멘트 하는 흙 흙도 하도 삐데서 인지 반들반들하여 뭍거나 날리지는 안으나 너무나 신기하였고 대부분 침대 생활을 하며 앞은 거실 중간은 침실 뒤는 주방이며 우리나라는 가급적 처가살이는 하지 않으려고 하나 베트남은 장가를 오는 경우가 보편화 되어 있었고 분가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여의치 않으면 지어진 부모님 집에 옆으로 벽 하나만 더 길게 세우고 스레트 씌우면 너무도 간단하게 집이 완성되기에 너무나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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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물 부족 국가지만 수돗물을 전 국민이 이용하고 수돗물은 안심할수 있는 나라지만 베트남은 물의 나라지만 흙탕물이고 수돗물도 여과에 문제가 있는지 투명하진 않았고 특히 건기(소금)가 있었고 우리나라처럼 똑같은 계량기가 있고 검침하여 1달에 한번 요금이 징수 되는데 우리는 자동납부가 보편화되어 있고 개인이 은행에 납부 하도록 되어 있으나 베트남은 집배원이 요금징수까지 하였으며 베트남 역시 수돗물을 먹지는 않으며 먹는 물은 집집마다 대형 항아리가 구석지거나 걸리적 거리지 않을 장소에 일렬로 놓여져 있는데 이는 빗물을 저장해 두고 음용수로 사용 빗물이 오래 될수록 좋다고 하며 가령 1~7번까지 항아리가 있다면 1번은 첫음 빗물을 담았기에 가장 오래 되었고 7번은 최근에 저장 하였으니 1번 항아리 물 먹고 다 먹으면 빗물 받고 순환식으로 돈다고 보며 빗물을 받아 2~3년씩 삭힌 물도 있는데 오래 될수록 좋은 물이라 하며 필자도 2주간 먹다가 왔는데 처음에 거부감이 있었지만 물맛은 청하 하였고 자꾸 먹으니 먹을 만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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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하면 코 흘리게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4~50년전에 먹을게 절대적으로 부족하던 시절이 막걸리 동동주 만들어 시장에서 파는 동내 아주머니가 있어 하얀쌀밥(꼬드밥)을 키나 바구니에 널어 약간 말리는 과정이 있는데 어찌나 먹고 싶은지 쪼매 훔쳐 먹기도 하고 배도 고프고 장난삼아 술 찌꺼기 먹고 비틀 거리기도 하고 아버지가 막걸리 사오라고 심부름하면 주전자 들고 사오다 쪽쪽 빨아먹던 생각 담배는 피우지 않지만 술은 한잔 하는 입장이라 지금에 술 문화까지 자의든 타의든 술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공산 국가라 할지라도 베트남역시 비슷한 양상 건배를 너무나 좋아해(모 하이 바 본 요) 하나(모) 둘(하이) 셋(바) 넷(본) 위하여(요) 틈만 나면 요요요가 넘쳐 났으며 특히한 점은 취기가 어느 정도 돌면 가운데에 접시나 술잔 2개가 올려질 만한 그릇을 업어두고 술잔을 2개 올려두고 술을 따라 놓고 그 옆에 담배와 라이타 나두고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다 마시고 싶으면 가져다 마시고 다시 술잔에 채우고 피우고 싶으면 가져다 피우며 맥주는 5.3도로 우리나라 맥주보다 독해서 인지 약간 쓰며 소주는 주조공장에서 병으로도 나오지만 내려오는 전통 방식이 있는지 말통으로 배달되어 오거나 가져다 구멍가게에서 때가 꼬질꼬질(패트병도귀함)한 패트병에 담아서 판매 하는데 우리나라 돈으로 4홉들이 정도 되는 패트병 소주1병에 1.000원하며 25도 정도에 최하도수가 25도 위로 높은 도수는 있으며 우리나라는 도수가 내려가는 추세고 집에서 과일이나 약초에 담글쓰는 술이 독하게 나오듯 우리나라와 유사합니다
 
PS
20009년11월 베트남에서 2주간 보내면서 많은걸 배우고 왔지만 다문화 과련 활동하다 보니 부족한 부분이 많아 고심에 고심 끝에 쉬운 일은 결국 아니지만 생게 수단인 장사를 비롯하여 모든 걸 뒤로하고 오늘 2011년2월30일 16시30분집을 떠나 출발하는 관계로 준비해야할 서류 물건 장비 가장 중요한 집 정리로 시간이 촉박하여 마무리해야 겠으며 무궁무진한 베트남자료 정리를 끝내고 출발 한다면 다녀올 때쯤 끝이 나기에 아쉬움이 남지만 다녀와서 새로운 소식과 더불어 계속 연제 하도록 하고 이 자료를 접한 분들 중에 이민이나 결혼 사업 문화 여행 기타 등등으로 베트남에 대해 자료가 필요 하신 분은 이메일이나 유선이나 찾아오시면 사진과 더불어 자세히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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